비건 패션의 글로벌 시장 현황과 규모

전 세계 패션 산업에서 비건 패션이 차지하는 위상

 

비건 패션은 한때 ‘틈새 소비자층’을 위한 소규모 흐름으로 간주되었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전 세계 패션 산업의 구조를 실질적으로 변화시키는 주요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2024년 기준 전 세계 패션 시장의 총 규모는 약 1.7조 달러에 이르며, 이 중 비건 패션 관련 시장은 약 700억 달러 규모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는 전체 시장의 약 4%에 해당하는 수치로,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소비 전환의 핵심 동력으로 자리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특히 이 수치는 연평균 성장률(CAGR) 기준으로 보면 매우 주목할 만합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Allied Market Research에 따르면, 비건 패션 시장은 2021년부터 2030년까지 연평균 9.1%의 성장을 지속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이는 전체 패션 시장의 평균 성장률을 훨씬 웃도는 수치입니다. 즉, 기존 브랜드들이 환경·윤리적 소비에 대한 대중의 요구에 응답하지 못한다면, 비건 패션 브랜드들이 그 자리를 빠르게 대체해 나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장 확대의 중심축이 된 MZ세대 소비자 

 

비건 패션 시장의 성장 배경에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소비 성향 변화가 핵심적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패션을 단순한 외형 꾸미기가 아닌 ‘가치 표현의 도구’로 인식하고 있으며, 동물 복지, 환경 보호, 사회 정의 등의 요소를 소비의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특히 Z세대는 기성세대에 비해 브랜드 충성도는 낮지만, 브랜드 철학이나 사회적 메시지에 공감할 경우 즉각적으로 구매와 공유를 실천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미국의 한 소비자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MZ세대의 58%가 "자신이 구매한 제품이 동물성 소재를 포함했는지를 확인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이는 과거의 소비 패턴과 뚜렷하게 대비되는 결과이며, 비건 패션 브랜드들이 이 세대에 집중하는 전략적 이유를 설명해줍니다. 실제로 이 세대는 SNS를 통해 자신의 윤리적 소비 경험을 타인과 공유하며, 자연스럽게 비건 브랜드의 입소문을 퍼뜨리는 역할도 수행하고 있습니다. 즉, 이들의 소비는 단순한 개별 행위가 아니라 시장 전체의 구조를 바꾸는 파급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국가별 시장 성장률과 문화적 수용성의 차이 

 

글로벌 비건 패션 시장은 국가별로 그 성장 속도와 수용성이 상이합니다. 가장 큰 성장을 보이고 있는 지역은 서유럽과 북미입니다. 유럽연합(EU)의 경우 2022년부터 동물 복지 및 지속 가능성 기준을 의류 산업에도 적극 도입하고 있으며, 독일·프랑스·영국은 이미 비건 의류와 신발 판매량이 전체 패션 소비의 두 자릿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영국에서는 '비건 인증'이 부여된 의류 브랜드만을 소개하는 전문 플랫폼까지 운영될 정도로 시장이 성숙 단계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반면, 아시아 시장은 아직 전통 패션에 대한 선호가 강하지만, 한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MZ세대를 타깃으로 한 비건 브랜드들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의 경우 ‘비건 식품’ 트렌드에서 출발한 윤리적 소비 바람이 최근 의류와 잡화로 확장되고 있으며,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무신사 등 주요 이커머스 플랫폼에서도 비건 브랜드 카테고리가 신설되는 등 주목할 만한 변화가 감지됩니다. 이러한 흐름은 법적 제도와 소비 문화의 정교한 결합이 시장 확대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전통 명품 브랜드의 진입과 시장 재편의 신호 

 

비건 패션이 단지 중소 브랜드나 스타트업에 국한된 흐름이 아니라는 점은, 최근 전통 명품 브랜드들의 움직임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에르메스(Hermès)는 2022년부터 버섯 유래 가죽인 ‘Sylvania’를 활용한 제품군을 런칭하였고, 구찌(Gucci) 역시 일부 제품 라인에서 동물성 소재를 제거하고 친환경 합성섬유로 전환하는 중입니다. 이 같은 변화는 단지 이미지 개선 차원을 넘어서, 소비자층의 가치관 변화에 대응한 구조적 전환으로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고급 소비 시장에서의 이러한 전환은 비건 패션이 단지 윤리적 선택이 아니라 럭셔리 라이프스타일의 새로운 표준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상징적 의미를 지닙니다. 비건 소재는 이제 더 이상 ‘가짜 가죽’이 아니라, ‘기술과 디자인이 결합된 프리미엄 소재’로 재인식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와 같은 브랜드들의 변화가 이어진다면, 글로벌 패션 시장은 단순한 상품군 확장을 넘어서 산업 구조 전반의 친환경·윤리화라는 대전환을 맞이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비건 패션은 그 중심에서 새로운 패션 생태계를 재편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입니다.

 

기술 기반 혁신이 비건패션 시장 성장을 견인 

 

비건 패션 시장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는 숨은 동력 중 하나는 소재 및 제조 기술의 급진적인 발전입니다. 단순히 동물성 소재를 배제하는 수준을 넘어서, 새로운 가치를 지닌 고기능성 비건 소재들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뮤셀리움(Mycelium) 기반 가죽과 실크 대체 단백질 섬유, 해조류 섬유 등으로, 이들은 동물성 소재를 거의 완벽하게 대체하면서도 내구성·통기성·탄성 면에서 기존 소재와 동등하거나 더 뛰어난 성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술은 패션 브랜드뿐만 아니라, 바이오텍 스타트업과 협업하여 공동 개발하는 형태로 시장 확장을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볼트 스레드(Bolt Threads)’나 ‘모더니크(Modenik)’ 같은 기술 기반 기업들은 기존 소재 기업의 역할을 대체하며 새로운 산업 지형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기술 발전이 단순한 효율 향상을 넘어서, 비건 패션이 경쟁력 있는 상품군으로 자리잡는 결정적 기반이 되고 있는 셈입니다. 결과적으로, 비건 패션은 점점 더 ‘친환경 패션’이 아닌 ‘첨단 소재 산업’의 영역으로까지 확장되고 있습니다.

임팩트 투자와 ESG 경영 트렌드와의 접점 확대 

 

비건 패션은 환경적 측면에서의 긍정적 효과뿐 아니라, 금융 및 산업계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전략과도 긴밀히 연결되고 있습니다. 최근 대형 자산운용사와 임팩트 투자 펀드들은 ESG 평가 기준을 강화하며, 의류·잡화 산업군에서 비건 제품 비중을 확대하고 있는 브랜드에 우선적으로 투자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기업이 단지 수익을 넘어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는 구조로 나아가야 한다는 글로벌 흐름과 맞닿아 있습니다.

 

특히 유럽 연합과 북미의 일부 정부는 지속 가능한 소비를 장려하기 위해 비건 인증 제품에 세금 혜택 또는 친환경 라벨링 제도를 도입하고 있으며, 이는 비건 브랜드에게 중요한 경쟁 우위를 제공합니다. 향후에는 패션 기업들이 ESG 대응 전략의 일환으로 비건 라인 도입을 제도적으로 의무화하거나, 최소한의 기준으로 삼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비건 패션이 단순히 소비자의 윤리적 선택이 아닌, 글로벌 산업 구조 내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필수 전략이 되어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