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비건패션

전통직물과 비건 원단의 융합 가능성: 문화유산의 지속 가능화

by global-ad 2025. 5. 9.

비건 패션, 전통직물과의 대화를 시작하다


비건 패션은 동물성 원료를 배제하고, 환경과 인권, 윤리를 고려한 지속가능한 의류 문화를 지향합니다. 반면, 전통직물은 오랜 세월을 거쳐 특정 지역의 문화와 생활양식을 반영해 발전해 온 소재입니다. 이 둘은 겉보기에는 전혀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최근에는 지속가능성과 문화 보존이라는 공통의 철학을 기반으로 융합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전통직물은 천연섬유와 수공예 기술이 결합된 고유한 직조 방식으로, 지역 장인의 손길이 담긴 ‘시간의 유산’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 패션 산업의 대량 생산 논리에 밀려 점차 설 자리를 잃고 있으며, 산업적 지속 가능성 확보가 어려운 상태입니다. 이에 비건 패션이 갖는 '윤리적 소비'와 '생산지의 가치 존중'이라는 개념은 전통직물을 재조명하는 데 유효한 출발점이 되고 있습니다.

 

문화유산의 재해석: 전통직물의 생존 전략으로서의 비건 패션


전통직물이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보호의 대상이 아닌, 현대 생활 속에서의 실용적 가치를 입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비건 패션은 이러한 가치 회복의 동반자가 될 수 있으며, 특히 젊은 세대에게 전통 직물을 감각적이고 윤리적인 방식으로 전달할 수 있는 좋은 매개체가 됩니다.

예를 들어, 한국의 삼베는 한때 여름철 대표 직물로 사랑받았으나, 오늘날에는 화학섬유에 밀려 그 쓰임이 급감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대나무 섬유, 아마섬유와 함께 ‘식물성 천연섬유’로 분류되며, 비건 패션 브랜드의 친환경 컬렉션에 일부 적용되고 있습니다. 이는 삼베가 단순한 전통소재가 아니라, 비건 의류에 어울리는 기능성과 윤리성을 갖춘 원단으로 재해석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전통직물의 지역성 보존과 비건 패션의 윤리적 조달 시스템


비건 패션이 강조하는 가치 중 하나는 '윤리적 조달(Ethical sourcing)'입니다. 이는 원단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노동 착취가 발생하지 않고, 환경 오염이 최소화되었으며, 지역사회와의 상생이 전제되었는지를 평가하는 방식입니다. 전통직물은 이러한 조건을 자연스럽게 충족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인도 바라나시의 카디(khadi) 직물은 수작업 방직 방식으로 지역 자활센터에서 생산되며, 마하트마 간디 시절부터 ‘자립과 자유’의 상징으로 여겨졌습니다. 이 원단은 최근 유럽 비건 브랜드들과의 협업을 통해 다시 주목받고 있으며, 생산자의 이름이 제품 라벨에 표시되는 방식으로 윤리적 조달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에도 전주 모시, 제주 옥돔가사와 같은 전통직물이 지역 장인의 손에서 생산되고 있으며, 이를 수입 대신 국산 식물성 원단과 융합해 고유한 비건 컬렉션을 만드는 브랜드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는 비건 패션이 단지 동물성 소재를 배제하는 수준을 넘어서, 지역 문화와 함께 살아가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비건 원단과 전통직물의 기술적 접점: 융합을 위한 과학적 조건


전통직물과 비건 원단의 융합을 시도하기 위해서는 물리적 특성의 상호보완이 중요합니다. 전통직물은 일반적으로 천연 섬유 기반이며 직조 밀도가 낮아 통기성이 좋고, 부드러운 감촉과 자연스러운 주름이 특징입니다. 반면, 현대 비건 원단은 재생 섬유, 식물성 폴리머, 바이오 기반 나노섬유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내구성과 형태 유지력 측면에서 강점을 갖습니다.

이를 성공적으로 결합하기 위해선 다음과 같은 기술 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수축률 및 열가공 차이 조정: 삼베, 모시 등 전통직물은 고온에서 수축되기 쉬워, 열처리를 필요로 하는 비건 폴리머 원단과 결합 시 중간 완충 소재나 이중직 기법이 필요합니다.

염색 호환성 확보: 천연 직물은 천연 염료와의 반응성이 높지만, 비건 원단은 생분해성을 높이기 위해 염색제 선택이 제한적입니다. 이에 따라 pH 중성 고정염료 또는 마이크로 플로팅 염색 방식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접합 기술의 섬세화: 전통직물은 손봉제가 일반적이나, 현대 패션의 대량 생산을 위해서는 친환경 초음파 접합기술이나 재생 실크 혼합 접착 방식이 도입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기술 융합을 통해 전통직물은 실용성과 시장성을 얻고, 비건 패션은 미학적 다양성과 감성적 깊이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디자인 사례 분석: 전통을 입은 비건 패션 컬렉션


비건 원단과 전통직물을 융합한 디자인은 단순한 소재의 결합을 넘어, 스토리텔링을 담은 감성 디자인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브랜드는 단순한 '에코 컬렉션' 이상의 정체성과 차별성을 구축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 교토의 비건 브랜드 Botanic Loop는 ‘하이쿠 시리즈’라는 컬렉션에서 전통 염색 기법 ‘유젠(zome)’을 활용한 천연 면사 비건 원단에 일본 전통문양을 프린트하여, 기능성 패딩과 캐주얼 셔츠에 적용했습니다. 이 제품은 교토 장인의 수작업이 결합되어 ‘입는 시(詩)’라는 평을 받았으며, 실제 패션테크 박람회에서 디자인상 수상으로 이어졌습니다.

한국에서는 비건 브랜드 에코아틀리에(EcoAtelier)가 조선시대 직금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한지섬유와 버섯가죽을 활용한 ‘비건 한복 라인’을 선보였으며, 이는 외국인 관광객과 해외 한류 문화 행사에서도 큰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이 브랜드는 전통 직조 문양을 디지털화해 재현함으로써, 고전미와 미래지향적 소재를 동시에 표현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러한 사례는 비건 패션이 전통 직물과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미적 감수성과 국제적인 스토리텔링 역량을 확보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글로벌 협업과 비건 전통 패션의 국제화 가능성


비건 패션과 전통직물의 융합은 로컬을 넘어 글로벌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특히 패션산업의 주요 도시인 런던, 파리, 뉴욕, 밀라노에서는 전통 소재 기반의 지속가능 패션을 새로운 ‘컬처 패션’으로 인식하며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습니다.

2023년 파리 패션위크에서는 프랑스 비건 브랜드 ‘VEGETAUX’와 모로코 전통 텍스타일 공방 ‘Moulay Idriss’가 협업한 컬렉션이 공개되었습니다. 이들은 선인장 가죽과 모로코 전통 모슬린 직물을 결합해 다기능 재킷과 스카프를 제작했고, 전량 한정 수작업 방식으로 생산되었습니다. 이 제품은 ‘전통+기술+지속가능’이라는 세 키워드로 유럽 내 비건 소비자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한편, 국내에서도 서울디자인재단 주관으로 비건 브랜드와 한국 전통 섬유산업 단체 간의 공동 프로젝트가 기획되고 있으며, 조선 왕실 직물과 생분해성 대체섬유를 활용한 하이패션 협업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국제적 협업은 지역 자원의 재해석, 윤리적 가치를 갖춘 문화유산의 글로벌 재포지셔닝이라는 관점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비건 패션과 장인 보호의 조화: 지식전승의 플랫폼화


전통직물은 고도의 장인 기술을 기반으로 유지됩니다. 그러나 고령화, 산업 기반 약화, 후계자 부족 등의 이유로 많은 전통 직조 기술이 단절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비건 패션 브랜드는 장인과의 협업을 통해 기술 전승을 ‘산업 내 교육과 콘텐츠’로 전환하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비건 브랜드 Mother of Pearl은 인도 북부 장인들과 협업하여 천연염색 기법을 기록하고 디지털화하였으며, 해당 과정과 결과물을 NFT 형태로 보호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 상품 생산이 아닌 장인의 지식과 문화를 보존하는 플랫폼 전략으로도 작용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안동포 명인회와 함께 한 비건 액세서리 브랜드가 연 2회 ‘전통섬유 실습 워크숍’을 운영하며, Z세대 디자이너와 장인을 연결하는 중간 조직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는 기술 전수를 상업화하면서도, 공존적 생태계를 만드는 의미 있는 시도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전통직물과 비건 원단의 융합 가능성: 문화유산의 지속 가능화



공공정책과 제도적 연계의 필요성


비건 패션과 전통직물 융합이 지속적으로 확대되기 위해서는 공공 부문과의 전략적 연계가 필요합니다. 특히 전통문화의 보존은 개별 브랜드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장기적인 정책적 지원과 인프라 구축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유럽연합(EU)은 2024년부터 ‘문화기반 순환섬유 개발 프로젝트’를 통해, 지역 전통직물을 비건 섬유 산업과 연계하는 스타트업에 자금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해당 프로그램은 소재 혁신, 디자인 창업, 교육 연계를 포괄하며, 각국 정부와 공동으로 운영됩니다.

한국에서도 문체부와 중기부, 환경부 등이 협업하여 ‘전통직물의 ESG 기반 활용 매뉴얼’을 마련하고, 이를 통해 비건 브랜드 인증 기준에 ‘지역 문화 활용도’를 포함하는 시범 사업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제도적 기반은 기업에게 명확한 방향성을 제시하고, 소비자에게는 신뢰 기반의 브랜드 선택 기준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문화유산의 산업화: 비건 패션이 제안하는 새로운 해석


문화유산의 보존은 더 이상 박물관의 유리 케이스 안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 살아 숨쉬는 실용적 가치로 전환되어야 지속 가능합니다. 비건 패션은 문화유산의 ‘산업화’에 있어 윤리성과 창의성을 동시에 담아낼 수 있는 훌륭한 실험장이 되고 있습니다.

브랜드는 더 이상 제품을 통해 단지 물건만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이 옷은 어디서 왔고, 어떤 사람이 만들었으며, 어떤 전통을 품고 있는가’를 함께 전달합니다. 전통직물의 재해석은 단지 외형적인 디자인 변형이 아니라, 가치와 서사, 철학의 현대적 재조립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습니다.

서울의 비건 브랜드 숨결(SumGyeol)은 ‘100년 후에도 입을 수 있는 옷’을 모토로, 한산모시와 버섯가죽을 결합한 재킷을 출시하며 ‘시간을 엮은 패션’이라는 콘셉트를 제시했습니다. 이는 문화유산을 제품으로 실용화하면서도, 본래의 정신과 정체성을 훼손하지 않는 해석 사례로 주목받았습니다.



전통직물과 비건 패션의 미래: 지속가능성과 정체성의 동행


전통직물과 비건 패션은 각기 다른 영역에서 출발했지만, 지속가능성이라는 핵심 키워드를 통해 결국 하나의 길에서 만나고 있습니다. 둘 다 생태계를 보호하고, 지역 가치를 존중하며, 사람 중심의 생산 시스템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닮아 있습니다.

향후에는 지역 공동체 단위의 생산 협동조합, 공공기관과 민간 기업 간의 융합 플랫폼, 장인과 디자이너의 공동 저작물 관리 시스템 등 지속가능성과 정체성을 동시에 실현할 수 있는 생태계 중심 모델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또한 소비자 역시 단순한 친환경을 넘어서, ‘내가 입는 옷이 어떤 문화를 담고 있는가’를 중요한 구매 기준으로 삼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브랜드에게 있어 윤리성과 미학, 그리고 서사를 결합한 새로운 기획 전략의 필요성을 요구하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비건 패션과 전통직물의 융합은 단순한 소재 조합을 넘어, ‘지속가능한 문화유산’을 만들어가는 의미 있는 진화이며, 이는 앞으로의 패션산업이 반드시 고민해야 할 방향성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