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 패션, 왜 비싸다고 느껴지는가
비건 패션에 대한 대중의 첫인상은 종종 ‘생각보다 비싸다’는 인식으로 귀결됩니다. 일반적인 소비자는 가죽, 울, 실크 같은 동물성 소재를 제거하면 원가가 낮아질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단순한 논리는 비건 패션의 복합적인 가격 구조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합니다. 실제로 비건 패션은 단순한 소재 대체의 개념이 아니라, 생산 전반에 걸쳐 윤리적 가치와 환경적 지속 가능성을 반영한 시스템을 요구합니다.
따라서 그 가격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선택과 철학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소비자는 점점 더 ‘왜 이 제품이 이런 가격을 갖는가’를 묻기 시작했고, 비건 브랜드는 그 질문에 답을 제공해야 할 시점에 놓여 있습니다.
소재 비용 친환경은 값싸지 않다
비건 패션에서 가장 큰 오해 중 하나는 ‘친환경 소재는 싸다’는 믿음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입니다. 예를 들어 파인애플 잎사귀로 만든 피나텍스는 천연가죽보다 가공 비용이 높고, 선인장 가죽(Deserto)은 기후 조건에 따라 생산량이 달라 가격 변동성이 큽니다. 버섯 가죽(Mylo)의 경우, 균사체 배양부터 가죽 형태로 만들기까지 최소 수주가 소요되며, 여전히 상용화된 공장도 소수에 불과합니다.
이러한 신소재들은 대량 유통되지 않기 때문에 원단 단가가 높으며, 유통 과정에서도 프리미엄이 붙습니다. 단순한 PU(폴리우레탄) 인조가죽보다 최소 3~5배의 원단 비용이 발생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생산 규모의 한계, 소량 생산의 현실
대부분의 비건 패션 브랜드는 윤리적 생산을 위해 대량 생산을 피하고, 소규모 공방이나 사회적 기업과 협력합니다. 예를 들어 페어트레이드 인증을 받은 생산처에서 소량으로 제작하거나, 한 제품당 생산 수량을 제한하는 ‘슬로 패션’ 방식을 택합니다. 이러한 방식은 노동자의 복지를 고려한 윤리적 선택이지만, 원가 절감에는 큰 제약을 줍니다.
대형 공장에서는 수만 개를 한 번에 찍어내기 때문에 단가를 낮출 수 있지만, 소규모 브랜드는 이와 같은 방식이 불가능합니다. 또한, 장기적인 파트너십을 유지하기 위해 정가제를 고수하거나, 공정계약을 맺는 경우가 많아 가격 조정의 유연성도 적습니다.
R&D 비용, 지속 가능한 혁신은 공짜가 아니다
비건 패션은 ‘기존에 없던 제품’을 새롭게 창조해야 하는 숙명을 지닙니다. 예를 들어 동물가죽의 질감, 내구성, 방수 기능을 모두 구현하면서도 친환경적인 소재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R&D 비용이 필요합니다. 일부 브랜드는 자체 연구소를 운영하거나, 바이오 소재 스타트업과의 협업을 통해 신소재를 실험합니다. 마이셀리엄 기반 가죽을 생산하는 미국의 Bolt Threads는 버섯 가죽 상용화를 위해 수년간 수백만 달러를 투자했습니다. 이러한 연구개발은 단기 수익으로 회수하기 어려우며, 제품 가격에 반영될 수밖에 없습니다.
비건 인증 비용, 신뢰의 대가는 존재한다
‘비건’이라는 타이틀을 믿고 구매하는 소비자가 늘어나는 만큼, 브랜드 입장에서는 인증의 신뢰성이 곧 브랜드의 생명줄이 됩니다. 하지만 비건 인증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제품별로 까다로운 심사 기준을 통과해야 하며, 인증 유지 및 갱신 과정에서도 지속적인 비용이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 유럽의 V-Label 인증은 원단뿐 아니라 염료, 접착제, 지퍼 등 부자재까지 모두 점검 대상입니다. 이 과정을 한 번에 통과하기 어려워 컨설팅 업체를 활용하기도 하며, 이로 인한 부가비용도 적지 않습니다. 소규모 브랜드에게는 큰 부담이 되며, 이는 소비자가 지불하는 가격으로 환산됩니다.
디자인과 제작 방식, 효율보다 정성
비건 패션 브랜드는 일반 브랜드와는 다른 제작 방식을 채택합니다. 예를 들어 복잡한 합성 가죽 대신 천연 소재를 수작업으로 재단하거나, 고온 프레스가 불가능한 친환경 원단을 활용하기 위해 별도의 제작 설비를 갖추기도 합니다.
또 일부 브랜드는 모든 제품에 생산자명을 기재하거나, 제품마다 고유한 제작 기록을 남기는 식으로 ‘투명한 공정’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디테일은 산업표준 공정보다 훨씬 많은 시간과 인력을 요구하며, 이는 자연스럽게 단가 상승으로 이어집니다.
유통 채널의 구조, 대형 유통망의 진입 장벽
비건 브랜드는 유통 구조에서도 불리한 위치에 있습니다. 대형 유통망은 입점 수수료, 마케팅 비용, 시즌별 행사 참여를 요구하며, 이러한 조건을 수용하기 어렵거나 철학적으로 맞지 않다고 판단해 입점을 포기하는 브랜드도 많습니다. 결과적으로 자체 쇼핑몰, 독립 편집숍, 비건 전문 플랫폼 등 제한된 채널에서만 유통되며, 이는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소량 유통은 물류비와 고객 응대 비용까지 높이고, 결과적으로 소비자 가격 상승을 유발합니다.
지속 가능한 포장재 사용, 숨은 비용의 존재
많은 비건 브랜드는 제품 포장까지 철저하게 친환경 원칙을 고수합니다. 바이오 플라스틱, 무산림훼손 인증지, 비표백 종이, 식물성 잉크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러한 자재들은 원가가 높고, 대량 구매 시에도 일반 포장재보다 3~4배 이상 비쌉니다. 더불어 브랜드는 포장 폐기 이후의 친환경성을 고려해 재활용 가능 구조나 생분해성 포장 시스템을 설계하기도 하며, 이에 대한 개발비까지 부담합니다. 이는 소비자가 인지하지 못하는 ‘숨겨진 비용’이지만, 제품 가격에 반드시 반영될 수밖에 없습니다.
유행보다 철학, 마케팅 구조의 차이
비건 브랜드의 마케팅은 ‘가치를 팔기 위한 설득 과정’입니다. 이는 트렌드에 의존하는 패스트패션과 달리, 깊이 있는 콘텐츠 제작과 고객과의 공감 기반 스토리텔링이 중심이 됩니다. 예를 들어 제품을 착용한 고객 인터뷰, 소재의 생산지 이야기, 기후위기와의 연관성 등을 콘텐츠화하여 전달합니다.
하지만 이처럼 고도화된 콘텐츠 마케팅은 고정된 예산 없이 지속적인 크리에이티브 인력을 필요로 하며, 브랜드 운영비의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단기적으로는 매출과 연결되지 않아 마진율은 낮지만, 브랜드 이미지 구축에는 필수적인 전략입니다.
소비자의 심리적 기대 “비건이니까 싸야 한다?”
소비자들은 비건 제품이 ‘불편을 감수한 대체재’라는 인식이 남아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고가의 비건 제품에 대해 “왜 더 비싸냐”는 질문을 제기하며, 비건이니까 싸야 한다는 심리적 기준을 갖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비건 제품이 동물성 제품보다 더 복잡한 공급망과 윤리 기준을 충족해야 하며, 이로 인한 비용은 오히려 더 큽니다. 소비자 교육이 부족한 상황에서 이러한 기대 차이는 브랜드에 대한 오해로 이어지며, 구매 전환율 저하를 초래하기도 합니다.
글로벌 시장과의 비교, 한국이 더 비싼가?
해외에서는 비건 패션이 이미 성숙기에 접어든 시장도 존재합니다. 유럽은 친환경 인증을 받은 원단 공급업체가 많고, 정부 차원의 인증 지원 프로그램이 있어 소재 단가 자체가 낮습니다. 반면 한국은 아직 대부분의 비건 원단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국내 비건 인증 시스템도 미비합니다.
이에 따라 제품당 원가가 높고, 배송 및 통관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이 추가로 더해집니다. 한국에서 판매되는 비건 패션이 해외보다 비싸게 느껴지는 이유는 단순히 브랜드 프리미엄 때문이 아니라, 인프라 차이에서 비롯된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가격 이상으로 평가받는 브랜드의 조건
일부 비건 브랜드는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 성공적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 비결은 제품이 아닌 ‘이야기’를 팔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엘비스 & 크레스(Elvis & Kresse)’는 폐소방호스를 업사이클링해 만든 가방을 판매하면서, 수익의 50%를 소방관 복지에 기부합니다.
이처럼 소비자가 단순히 제품이 아닌 의미 있는 참여자가 될 수 있는 브랜드는 가격 저항선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즉, ‘비싼데도 산다’가 아니라 ‘비싸서 사고 싶다’는 정서로 소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비건 패션의 가격을 이해하는 새로운 기준
기존의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기준으로 비건 패션을 평가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대신 ‘가치 대비 가격(Value for Values)’이라는 새로운 소비 지표가 필요합니다. 이는 소비자가 제품을 통해 얻는 정서적 만족, 윤리적 안심, 환경적 기여까지를 포함한 평가 체계로, 지속 가능한 브랜드와 소비자가 공유할 수 있는 정량적/정성적 지표입니다. 장기적으로는 이런 소비 프레임이 확산될수록, 비건 패션의 가격이 더 이상 장벽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비건 패션의 가격 장벽을 낮추기 위한 대안들
비건 브랜드들도 가격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리퍼브 제품의 리셀 플랫폼 운영, 크라우드 펀딩을 통한 선주문 할인, 비건 소재 협동조합 설립 등이 대표적입니다. 일부 브랜드는 다회용 패키지 회수 프로그램을 통해 비용을 절감하고, 이 절감분을 제품 가격에 반영하기도 합니다.
정부 차원의 소재 연구 지원, 인증비 감면, 비건 유통 플랫폼 구축도 중요한 정책적 대안입니다. 가치를 지키면서도 가격 장벽을 낮추는 이중 전략이 요구되는 시점입니다.
비싸다고 단정 짓기 전에, 그 안을 들여다보자
비건 패션은 단순히 제품이 아닌 하나의 ‘윤리적 구조’입니다. 그 가격 안에는 수많은 선택과 고민, 실험과 책임이 들어 있습니다. 단순히 가격만을 보고 비건 패션을 평가하기보다는, ‘왜 이 가격이 되었는가’, ‘나는 어떤 가치에 동참하고 있는가’를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이제는 ‘비건이니까 비싸다’가 아니라, ‘비건이라서 이만큼의 가치를 담고 있다’는 새로운 인식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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